오늘 리뷰할 책은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류'이다. '류'는 2015년 상반기 나오키상 수상작으로 1970~80년대 대만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할아버지를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그린 미스터리 소설이다.
간단한 줄거리
1970년대 대만, 어느 날 소년 예치우성은 할아버지 예준린의 시신을 목격한다. 지지부진한 경찰의 수사 속에서 시간은 흐르고 예치우성은 다른 평범한 소년들처럼 사랑과 이별을 겪으면서 성장한다. 시간이 흘러 이십대 중반이 된 예치우성은 한 사진에서 범인에 대한 단서를 발견하고 혼란스러운 사실들을 연달아 마주한다.
기억나는 문장
1895년부터 1949년까지의 50여 년간, 대만은 일본 통치를 받았다. 청일전쟁 패전에 따른 할양이었다. 이 기간에는 동화정책으로 학교 교육은 모두 일본어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을 고향처럼 사랑하는 위에 씨 같은 일본어 세대가 있기 마련이었다. 그들의 일본 사랑은 예사롭지 않은 부분이 있었다. 2차 세계대전 때는 스스로 자원해 대일본제국을 위해 싸운 사람도 있을 정도였다. 그런 탓에 3만 명이나 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교과서에 적혀 있다. (중략) 그런데 패전과 함께 일본은 대만을 깨끗이 버렸다. 아무래도 너희들은 대만인이야. 대만인은 대만인이지 일본인은 아니야. 그러니 부디 행복해. 그때까지 일본인으로 살아온 사람들의 자아는 그 시점에서 소리를 내며 무너졌다. 대륙에서 공산당에 쫓긴 국미당이 이 섬으로 들어온 사태는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바로 대만인에 대한 탄압이 시작되었다. 일본어뿐만 아니라 대만어 사용까지 금지되었다.
"그의 눈에 일본 통치 시절을 그리워하는 우리 같은 사람들은 노예근성이 뼛속까지 박힌 배신자로 보였겠죠. 그건 오스트리아나 체코 사람들이 독일 노래를 부르며 나치 시절을 그리워하는 거나 마찬가지일 수도 있으니까요."
언젠가 진급하면 우리도 후배를 괴롭히는 존재가 될 것이다. 이 학교에서 우리가 배우는 것은 절대복종과 괴롭힘을 함께 견딘 동료들에 대한 연대감과 소속감이다. 그리고 다음 세대에 물려주는 것은 분노의 칼끝을 원한도 없는 사람에게 돌리는, 교묘한 자기기만이다.
"아니, 자네 전 여자친구는 피가 이어진 남매였을지도 몰랐다며?"
'나는 정말로 네가 좋았어.'
'이번 생에서는 인연이 아니었던 거야.'
리뷰
소설 '류'는 예치우성이 자신의 할아버지 예준린을 죽인 범인을 찾는 과정을 큰 줄기로 하면서 '샤오잔', '마오마오'와의 이야기를 덧붙였다고 볼 수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약간 산만한 느낌을 받았는데 이는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익숙하지 않아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이야기 전반에 걸쳐 등장 인물들의 말과 행동에서 대만의 일본에 대한 복잡한 감정을 엿볼 수 있다. 대만은 한국과 달리 똑같이 식민지배를 당했음에도 일본에 대한 감정이 그리 나쁘지 않다고 한다. 어쩌면 한국보다 20년 더 긴 50년 동안 지배를 받았고 조선만큼 수탈이 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대륙 출신 사람들과 섬 출신 사람들과의 갈등도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어쨌든 전반적으로 일본이 대만을 점령해서 대만이 잘 살 수 있게 되었다는 느낌을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받았다.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3명의 인물 예준린, 위우원, 예치우성은 저마다 선택을 한다. 예준린은 자신의 죄에 대한 속죄의 차원에서 위우원을 거둔다. 위우원이 자신의 가족에게 위험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위우원은 나중에 예준린의 손자 예치우성이 자신을 찾아올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예준린의 가족들을 죽이지 않고 떠난다. 마지막으로 예치우성은 복수를 위해 위우원 삼촌을 찾아가지만 결국 그를 죽이지 않는다.
인상 깊은 점은 예준린과 위우원 모두 누군가 자신을 죽이려 찾아왔을 때 자신의 죄를 담담히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들은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을 용서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죄를 어떤 방식으로든 속죄했고 이는 결국 3대째인 예치우성이 증오의 연쇄를 끊는데 영향을 미친다.
1970년대 대만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배경으로 해 다른 일본 소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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