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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영 '구의 증명' 리뷰

by 오리아 2022. 8.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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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나무 사진
출처 픽사베이

 

오늘 리뷰할 책은 최진영 작가의 '구의 증명'이다. 소설 '구의 증명'은 소년 '구'와 소녀 '담'의 어린 시절 이야기에서 시작해, 구의 죽음을 겪은 담이 구의 시체를 먹겠다는 결정을 내리기까지 일어난 사건들을 다룬다.

 

 

기억나는 문장


도둑질이라고 말하긴 처음이었고, 그렇게 말하자마자 그런 표현을 쓴 것을 후회했다.
아니까 너는 하지 말라고.
왜?
니가 그러는 건 싫어.
너는 되고 나는 안 돼?
······
······
내가 하면 되니까 너는 안 하면 좋겠어.
그럼······내가 하면 안 되는 거는 너도 안 하면 좋겠어.

 

 

그 누구도 몰라야 한다.
어차피 관심 없지 않았는가. 사람으로서 살아내려 할 때에는 물건 취급하지 않았는가. 그의 시간과 목숨에 값을 매기지 않았는가. 쉽게 쓰고 버리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하지 않았는가. 없는 사람 취급받던 사람을, 없는 사람으로 만들 수는 없다.

 

구가 내 손을 놓는 순간 나는 정말 더러워지는 것 같았다. 아이들이 지어낸 소문을 사실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았고 우리가 다정하게 지낸 시간들이 범죄 같았고 그들의 야유에 굴복하는 것 같았다. 사나운 사람으로 득실거리는 광장 한가운데 내팽개쳐진 벌거숭이가 된 것처럼 외롭고 무서워서, 화가 났다.

 

작년에 구는 더 시골로 들어가자고 했다. 경찰도 공무원도 CCTV도 없는 산골로 들어가자고. 우리는 번개 맞아 죽은 고목 같은 집에서 까만 청설모처럼 살아야 한다고. 지상으로는 최대한 내려오지 말고 고목 안 고목 위에서만 살면 아무도 우리가 사람인 줄 모를 거라고.

 

나의 미래는 오래전에 개봉한 맥주였다. 향과 알코올과 탄산이 다 날아간 미적지근한 그 병에 뚜껑만 다시 닫아놓고서 남에게나 나에게나 새것이라고 우겨대는 것 같았다.

 

두 분이 게으르게 살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하지만,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는 말과 부모님을 이해한다는 말이 같은 뜻은 아니었기에, 아버지와 악수를 하고 싶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주는 술을 넙죽넙죽 받아 마시며 아버지 힘드시죠, 라는 눈빛을 건네고 싶진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지만 이해하지도 않는 선. 그 선을 지키는 것이 내가 부모님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우리 삶은 아름답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분명 아름다운 순간도 있었다. 아름다움은 우리가 함께일 때 가능했다. 구에 대한 모든 것은 나도 알고 있어야 하며 내가 모르는 것은 그 누구도 알아서는 안된다는 욕심.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을 구 혼자서만 품고 있는 것이 싫었다. 마음에서 나를 잠시라도 지우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구의 기쁨과 환희, 우울과 절망에도 내가 있어야 했다.

 

여명에 기댄 할아버지의 굽은 등이 생각났다. 어린 날 새벽에 잠깐 깨었을 때 보았던 꿈같은 기억이었다. 그때 밖은 파랗고 할아버지의 몸은 검었다. 파랗고 검은 것은 외롭다. 외로운 색이다. 어느 새벽에, 아픈 이모가 꼭 할아버지처럼 구부정하게 앉아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잠결에 그 장면을 보고 엉엉 울었다. 이모도 가겠구나. 할아버지처럼 가겠구나.

 

나는 구에게 물었다. 저 기왓장에 소원을 써야 한다면 어떤 문장을 쓰겠느냐고. 곰곰 생각하던 구가 대답했다.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주세요.
나는 구의 말을 마음으로 따라했다.
구는 조금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안 된다면 이번 생은 빨리 감기로 돌려주세요.
그럼 빨리 죽잖아.

 

도망가자.
담이 말했다.
더 늦기 전에,
내가 대답했다.
그만둬.
무슨 뜻이야?
씨발 나한테서 떨어지라고.

 

나는, 구의 생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구의 인간다움을 좀먹고 구의 삶을 말라 비틀어지게 만드는 돈이 전쟁이나 전염병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다를 게 없었다. 그건 구의 잘못이 아니었다. 부모가 물려준 세계였다. 물려받은 세계에서 구는 살아남을 방도를 찾아야 했다.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했을까?

 

판도라가 항아리를 열었을 때 그 안에서 온갖 나쁜 것들이 빠져나왔대. 근데 거기 희망은 왜 있었을까. 희망은 왜 나쁜 것을 모아두는 그 항아리 안에 있었을까. 이 얘기를 담에게 꼭 해주고 싶었는데 해주지도 못하고 나는 죽었다. 희망은 해롭다. 그것은 미래니까. 잡을 수 없으니까. 기대와 실망을 동시에 끌어들이니까. 욕심을 만드니까. 신기루 같은 거니까.

 

 

리뷰


소설에서 구가 언급한 '소니 빈'은 15세기 무렵 스코틀랜드에서 한 식인가족이 1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잡아먹었다는 설화에 등장하는 인물이다. 소설 전반에 걸쳐 소니 빈 설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소재들이 눈에 띄는데 그중 가장 직관적인 것은 식인 행위이다. 

 

식인행위 외에도 빚쟁이에게 쫓기던 구가 담에게 아무도 찾지 못하는 시골에 가서 살자고 말하는 장면은 소니 빈이 인적이 드문 동굴로 숨는 장면을 연상시키고 태어나자마자 부모의 빚을 떠안은 구에게 무슨 잘못이 있냐는 담의 생각은 소니 빈 가족의 아이들이 사람 고기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먹었다가 사형당했다는 구의 말과 겹치는 부분이 있다.

 

소설 속에서 구와 담의 연인 같으면서도 가족 같은 미묘한 관계의 표현이 매우 섬세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이는 구와 담의 비극을 더욱 안타깝게 만든다. 인간적이고 따뜻한 인물들이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파멸로 향하는 과정은 조세희 작가의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두 작품 모두 어느 정도 비슷한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지만 구의 증명은 사회비판보다는 구와 담의 애정 관계에 좀 더 초점을 맞췄다는 차이점이 있다. 

 

오랜만에 재밌게 읽은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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