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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도서

룰루 밀러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리뷰

by 오리아 2022. 8.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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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씨
출처 픽사베이

오늘 리뷰할 책은 룰루 밀러의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다. 룰루 밀러는 미국의 과학전문기자로 자신의 책에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유명한 분류학자의 업적이 허상임을 드러내고 그 과정에서 깨달은 것들을 에세이의 형식으로 풀어낸다.

 

 

줄거리 소개


이 책은 데이비드 스타가 어떤 사람인지 추적하는 동시에 저자가 자신의 혼란스러운 삶과 아버지의 허무주의적 관점을 극복하는 과정을 다룬다. 책의 전반적인 흐름은 다음과 같다.

 

  1. 어린 시절 저자는 우주의 관점에서 인간은 개미나 별과 다르지 않으며 티끌 같은 존재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허무주의에 빠진다.
  2. 거기에 더해 사랑 문제로 혼란스러운 삶을  살던 그녀는 삶에 대한 해결책을 얻기 위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라는 한 분류학자의 생애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3. 그녀는 위대한 업적과 반전운동가로 알려진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사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직장 동료를 죽인 살인마이고 자신의 신념을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끔찍한 일을 겪게 만든 사람임을 알게 된다.
  4. 데이비드는 자기 확신으로 무장해 자신의 치부와 결점을 능수능란하게 방어하는 사람이고 우생학을 미국에 도입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5. 미국 정부의 불임화 정책 피해자들을 만난 그녀는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 하찮은 존재라도 인간은 서로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존재임을 느낀다.
  6. 데이비드의 생애를 추적하던 그녀는 그가 평생을 바쳐 헌신해온 '어류'가 사실 존재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7. 그녀는 자연에 인위적인 질서를 부여하는 것은 사람의 편의와 허상의 위계를 위한 것이고 자연의 본래 모습을 왜곡한다고 말하면서 혼란스러운 자연처럼 자신의 삶도 혼란스러운 것이 당연한 것임을 깨닫는다.
  8. 그녀는 우리가 '물고기'로 대표되는 기존의 틀을 포기했을 때 더 소중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면서 책을 마무리한다. 

 

기억나는 구절


실제로 아가시가 쓴 글을 보면 그 생각을 분명히 알 수 있다. 그는 모든 종 하나하나가 "신의 생각"이며, 그 "생각들"을 올바른 순서로 배열하는 분류학의 작업은 "창조주의 생각들을... 인간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데이비드가 손에 꽃을 들고 해왔던 일들은 "무의미"하거나 "소모적"이거나 "야심 없는"일이 아니었다. 바로 그 저명한 아가시가 정의한바 "가장 높은 수준의 선교 활동"이었던 것이다. 그것은 신의 계획, 생명의 의미, 어쩌면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하기 위한 길까지 해독해내는 작업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그것이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내 주의를 끌었던 이유다. 결코 승리하지 못할 거라는 그 모든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로 하여금 혼돈을 향해 계속 바늘을 찔러 넣도록 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었다. (중략) 어쩌면 그는 무언가 핵심적인 비결을 찾아냈을지도 몰랐다. 아무 약속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에서 희망을 품는 비결, 가장 암울한 날에도 계속 앞으로 나아가는 비결, 신앙 없이도 믿음을 갖는 비결 말이다.

 

데이비드가 잠재적으로 자기 인격에 가해질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막아내는 걸 보면 참으로 놀랍다. 보고 있으면 숨이 가쁠 정도다. 마치 곡예사가 공중을 가로지르며 도저히 불가능할 것 같은 동작으로 몸을 뒤집고 돌리는 모습을 보는 것만 같다. (중략) 어느 쪽이든 그 방패는 그에게 효과가 있었다. 그는 아내 수전을 잃고 재빨리 또 다른 아내 제시를 얻었다. 물고기 컬렉션을 잃었지만 규모가 더 큰 컬렉션을 재구축했다.

 

한 번의 인터뷰만으로 어떻게 피크닉이 폭식 잔치로 바뀌었을까? 그건 강요에 의한 것이었을까, 암시를 따른 것일까, 아니면 고백이었을까? 나도 모른다. 내가 아는 것이라고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하와이에 도착한 지 이틀 만에, 제인 스탠퍼드가 독살당한 것이 아니라 과식으로 사망한 것이라는 도덕적 확신에 이르렀다는 것뿐이다.

 

누군가는 이 마을에서 어떤 아름다움을, 사회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들이 존엄을 누리며 살 수 있게 도와주는 근본적으로 인간적인 방식을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1880년대에 이곳을 방문한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그곳을 "거위보다 지능이 낮고 돼지보다 품위가 떨어지는", "피조물들"이 들끓는 "진정한 공포의 공간"으로 묘사했다.

 

그러면 패자들에 대해서는 어땠을까? 서서히 점점 더 많은 주들이 불임 화법을 통과시켰다. 코네티컷, 아이오와, 뉴저지 등에서. 성병에 걸렸는가? 싹둑. 간질 발작? 싹둑. 혼외 출생, 전과, 낮은 시험 점수? 싹둑, 싹둑, 싹둑!

 

오싹했다. 그 잔인성과 무자비함이. 그 추락의 무지막지한 깊이와 그 파괴적 광란의 크기가. 토할 것 같았다. 내가 모델로 삼으려 했던 자는 결국 이런 악당이었던 것이다. 자기 자신과 자신의 생각에 대한 확신이 너무나 강한 나머지, 이성도 무시하고 도덕도 무시하고, 자기 방식이 지닌 오류를 직시하라고 호소하는 수천 명의 아우성-나도 당신과 마찬가지로 인간이요-도 무시해버린 남자.

 

그런 관점에서 보면 나는 그가 자연의 질서라는 비전을 그토록 단단하게 붙잡고 늘어졌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덕과 이성과 진실에 맞서면서까지 그가 그렇게 맹렬하게 그 비전을 수호한 이유를. 바로 그 때문에 그를 경멸했음에도 어느 차원에서는 나 역시 그가 갈망한 것과 똑같은 것을 갈망했다.

 

그것은 지독히도 방향감각을 앗아가는 일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혼돈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
-내가 어려서부터 똑바로 바라보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써왔던 바로 그 세계관이었을 것이다. 아무런 목적도 의미도 없이, 개미들과 별들과 함께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떨어져 내리는 느낌. 소용돌이치는 혼돈의 내부에서 바라본, 차마 마주 볼 수 없을 만큼 눈부시고 가차 없고 뚜렷한 진실. 너는 중요하지 않아라는 진실을 흘낏 엿본 바로 그 느낌일 것이다.

 

나는 계속 걸었다. 이 황량하고 외딴 언덕이 우생학적 몰살의 진원이라 생각하니 오싹한 기분이 들었다. 우리가 이 나라의 정체성을 정의할 때 우리가 반대하는 것이라 간주하는 그 사고방식, 우리가 초등학생에게 나치, 다른 살마들, 나쁜 놈들에게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치는 바로 그 악행, 그것을 세계 최초로 국가 정책으로 삼은 나라가 바로 우리였다.

 

이것이 바로 다윈이 독자들에게 그토록 열심히 인식시키고자 애썼던 관점이다. 자연에서 생물의 지위를 매기는 단 하나의 방법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 하나의 계층구조에 매달리는 것은 더 큰 그림을, 자연의, "생명의 전체 조직"의 복잡다단한 진실을 놓치는 일이다. 좋은 과학이 할 일은 우리가 자연에 "편리하게" 그어놓은 선들 너머를 보려고 노력하는 것, 당신이 응시하는 모든 생물에게는 당신이 결코 이해하지 못할 복잡성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다.

 

조류는 존재한다.
포유로도 존재한다.
양서류도 존재한다.
그러나 꼭 꼬집어,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나는 이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 계속 그것을 잡아당겨 그 질서의 짜임을 풀어내고, 그 밑에 갇혀 있는 생물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믿게 되었다. 우리가 쓰는 척도들을 불신하는 것이 우리가 인생을 걸고 해야 할 일이라고. 특히 도덕적, 정신적 상태에 관한 척도들을 의심해봐야 한다. 모든 자 ruler뒤에는 지배자 Ruler가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의 범주란 잘 봐주면 하나의 대용물이고 최악일 때는 족쇄임을 기억해야 한다.

 

 

리뷰


보면 볼수록 감칠맛이 나는 책이다. 처음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을 봤을 때는 물고기를 소재로 하는 소설이거나 따분한 과학 서적이라고 생각해 손이 가지 않았다. 그런데 막상 읽어보니 책의 매력에 걷잡을 수 없이 빠져들었고 단숨에 끝까지 읽어버렸다. 이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하나의 주제로 정의하기 힘든 책으로 크게 보면 3가지 소재가 긴밀하게 얽혀있다. 

 

  •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와 미국의 우생학
  • '어류'에 대해 새로이 밝혀진 과학적 사실 :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 철학적 고민과 통찰: 저자의 정체성 혼란과 허무주의, 질서와 혼돈, 카테고리화(이름 붙이기)라는 행위의 재인식

분류학자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생애와 미국의 우생학

 

데이비드 스타 조던은 어렸을 적 식물을 분류하고 수집하는 일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살았던 시대와 그의 집안은 데이비드의 행동을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일로 생각했다. 이런 환경에서 데이비드는 분류학이 신의 의미를 해석해 세계에 질서를 부여하는 신성한 학문이라 말하는 스승 아가시를 만났다. 아가시의 말은 데이비드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아가시와의 만남은 데이비드의 '소모적이고 쓸데없는' 행동들을 단숨에 신의 의미를 해석하는 숭고한 선교활동으로 만든 것이다.

 

이를 생각하니 나는 데이비드 조던이 어떻게 수많은 역경에도 자신의 일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는지, 그리고 자신의 신념을 방해하는 동료를 가차 없이 제거해버릴 수 있었는지 유추할 수 있었다. 위대한 분류학자이며 반전운동가였던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사실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동료를 살해하고 우생학을 열렬히 지지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 과정은 읽는 사람에게 충격과 몰입감을 느끼게 한다.

 

데이비드의 삶은 독일의 한 인물을 떠오르게 한다. 그는 독일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그리던 미대 준비생이었고 술집에서 독일의 위대함을 하루 종일 떠들던 청년이었다. 데이비드가 자신 확신으로 가득 차 우생학을 미국에 도입한 것처럼, 그 청년은 후에 독일의 지도자가 되어 '순수한' 독일 민족을 지켜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을 위해 인류 역사에 남을 끔찍한 일을 저질렀다.

 

자신에 대한 강한 확신과 긍정적인 자아상은 멈추지 않는 엔진처럼 데이비드의 삶을 성공으로 이끌었지만 동시에 데이비드가 수많은 사람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주는 것을 멈추지 못하게 만들었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책을 끝까지 읽고 난 후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의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나는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말에는 3 가지 의미가 있다고 본다.

 

  1. 문자 그대로 분류학적인 관점에서 어류라는 범주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
  2. 두 번째는 데이비드 스타 조던이 평생을 바친 일이 사실 과학적으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의미+ 수많은 사람에게 불행을 가져온 데이비드 스타 조던에 대한 저자 나름의 복수
  3. 마지막은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물고기')는 인간의 편의와 허상의 위계질서를 염두하고 만들어진 것으로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

 

 

카테고리화(이름 붙이기)라는 행위의 재인식

 

그녀는 '물고기'처럼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대상을 포기하는 순간 새로운 탐구와 발견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물고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그 물고기를 포기함으로써 얻게 되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오랜 생각을 버림으로써 더 큰 우주의 질서를 구상할 수 있었다.

 

저자는 자(ruler) 뒤에는 지배자(Ruler)가 있다고 말하면서 도덕과 정의 차원에서 우리가 알고 있던 규칙들 또한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국가와 사회가 우리에게 주입한 것들, 도덕과 정의라는 이름으로 우리 머릿속에 내재되어 있는 관념들을 면밀히 점검한 후 오류가 있는 생각들은 해체하고 재조립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소설의 결말에 대한 개인적 생각

 

저자는 이야기의 결말에서 인간이 만든 질서(규범, 척도, 범주, 이름 붙이기)는 대상의 본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연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아름다운 존재라고 한다. 나는 자연과 세계에 이름을 붙이고 분류하는 것이 필연적으로 대상의 실제 모습을 왜곡하거나 제대로 보지 못하게 만든다는 그녀의 주장에 동의한다. 

 

그러나 인간이 만들어낸 질서를 제거하고 나면 더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세계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자연은 원래 혼돈한 상태이기에 우리의 삶도 혼돈인 게 당연하다는 저자의 주장에는 동의할 수 없다.

 

인간이 세계를 바라볼 때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세상을 단순화시켜 해석하는 것은 - 그것이 필연적으로 세상을 낮은 해상도로 바라보는 것과 같지만 - 그 틀이 없으면 해석 자체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질서가 해체되고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없는 세계는 저자의 상상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질서는 그 자체로는 중립적인 것이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세상을 해석하는 틀이 잘못되었는지 끊임없이 의심하고 업데이트하는 것이지 틀 자체를 갔다 버리는 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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