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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소설+에세이

김영하 살인자의 기억법 리뷰

by 오리아 2022. 8.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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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진 유리 사진
출처 픽사베이

 

김영하 작가의 대표작 <살인자의 기억법>이다. 한때 연쇄살인마였지만 나이를 먹고 은퇴한 주인공이 자신의 딸과 연인 관계인 남자가 자신과 같은 살인마임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딸을 지키기 위해 마지막 살인을 준비하는 이야기다.

 

 

기억나는 문장


“내가 마지막으로 사람을 죽인 것은 벌써 25년 전, 아니 26년 전인가, 하여튼 그쯤의 일이다. 그때까지 나를 추동한 힘은 사람들이 흔히 생각하는 살인의 충동, 변태성욕 따위가 아니었다. 아쉬움이었다. 더 완벽한 쾌감이 가능하리라는 희망. 희생자를 묻을 때마다 나는 되뇌곤 했다.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을거야.
내가 살인을 멈춘 것은 바로 그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옆집 개가 자꾸 우리 집을 들락거린다. 마당에 똥도 싸고 오줌도 지린다. 나를 보면 짖어댄다. 여기는 내 집이다, 이 똥개 새끼야. 개는 돌멩이를 던져도 달아나지 않고 주위를 맴돈다. 퇴근한 은희가 그 개는 우리 개라고 한다. 거짓말이다. 은희가 왜 내게 거짓말을 할까.

 

분명히 뭔가가 없어졌다고. 일지와 녹음기는 몸에 지니고 있으니 무사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사라졌다.
"그래, 개가 없어졌다. 개가 없어졌어."
"아빠, 우리 집에 개가 어디 있어요?"
이상하다. 분명히 개가 있었던 것 같은데.

 

리뷰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속도감이라 생각한다. 이 소설에서 속도감은 크게 두 가지 역할을 한다.

 

  • 1. 짧은 문장 위주의 남성적인 문체와 겉으로 보기에 직선적인 스토리 구조는 독자에게 고속 질주하는 느낌을 준다. 이러한 속도감 있는 전개는 주인공의 진술에 의존하여 소설을 읽던 독자에게 위화감과 의심을 느끼게 만들다.
  • 2.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소설의 결말부에서 주인공 '나'는 세계는 순식간에 붕괴되고 이 과정은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되기 때문에 주인공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큰 충격과 혼란을 준다. 

 

한편 <살인자의 기억법>을 읽는 독자는 일반적으로 다음과 같은 과정을 겪는데 이 과정들은 독자들로 하여금 소설에 더욱 몰입하게 해 준다.

 

  • 1. 중반부까지 시원시원하고 빠른 전개에 만족하며 속도감 있게 책을 읽어나간다.
  • 2. 문득 추리 소설인데 전개가 너무 단순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3. 무언가 놓친 부분이 있다고 느낀다. 
  • 4. 앞으로 돌아와 다시 읽어보니 실제로 주인공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한다.
  • 5. 소설은 결말을 향해 달려가고 마음의 준비를 할 새도 없이 주인공의 세계가 붕괴한다.

 

재밌게 읽었지만 개인적으로 약간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소설 내에서 결말의 반전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장치들이 조금 부족했다고 생각한다.

 

1. 강아지의 존재 유무에 대한 주인공의 발언에서 주인공의 신뢰성을 의심하게 만들고

2. 치매에 대한 언급을 통해 주인공의 세계가 진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암시를 주는 것

이 두 가지 정도가 결말의 반전을 예측할 수 있게 하는 대표적인 복선이라고 볼 수 있다. 

 

추리 소설에서 독자들은 복선이 너무 적으면 결말의 반전을 갑작스럽게 느끼고 그렇다고 너무 많은 복선을 넣으면 쉽게 결말을 예상한다. 두 지점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는 것은 이야기를 풀어나갈 때 매우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이런 어려움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복선이 조금 직관적이라고 느꼈다. 덜 직관적이어서 흩어져 있을 때는 무슨 의미인지 모르지만 조합되었을 때는 결말의 반전을 암시하는 장치들을 한 두 개 정도 더 넣었으면 좋았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파악하지 못한 복선이 더 있을 수도 있다...)

 

말은 참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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